지난 3월 전세계를 놀라게 한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을 기억하실 겁니다. 시작 전부터 ‘기계와 인간의 역사적인 대결’이라는 타이틀로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면서도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요. 결과는 4대 1로 ‘인공지능 알파고’의 압승. 이미 1997년 인공지능이 체스 세계챔피언을 누른 바 있지만 바둑은 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변수도 다양하여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전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 원자 수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바둑은 인공지능이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었는데요. 대국의 충격적인 결과가 전해지면서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이세돌의 패배 후 언론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추월했다는 투의 자극적인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냈습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달수준에 감탄하면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거나 능가하게 될 미래를 상상하며 섬뜩함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난공불락의 영역일 줄로만 알았던 바둑에서 세계 최고 바둑기사를 꺾은 알파고는 정말 인류를 앞지른 것일까요? 영화 속에서처럼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인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현실로 닥칠 날도 어쩌면 머지 않은 것일까요?
l 영화 터미네이터 중, 인공지능 스카이넷의 지시를 받고 인간과 전쟁을 치르는 로봇들의 모습.
알파고를 통해 본 인공지능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서 우선 인공지능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 ‘약한(weak) 인공지능’과 ‘강한(strong) 인공지능’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약한 인공지능이란 특정 분야에서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을 말합니다. 가령 애플의 ‘시리(Siri)’는 ‘음성을 듣고 무슨 말인지 인식하라’ 등 한정된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된 약한 인공지능입니다. 알파고 역시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둘지는 모르나, 바둑 등 학습한 분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약한 인공지능에 불과하죠.
우리가 보통 두려워하는 것은 문제의 영역을 좁혀주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줄 아는 강한 인공지능입니다. 알파고와 달리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등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지요. 바로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나, ‘어벤져스2’에서 본 ‘울트론’과 같은 로봇이 강한 인공지능에 해당되는데요. 강한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스카이넷과 울트론처럼 도리어 자신을 만들어낸 인류에 대적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 강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가능해질까요?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과거에 비해서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지만, 우선 아직은 한참 멀었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입니다. 인간처럼 자의식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인간의 뇌를 모방할 만한 컴퓨터 칩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컴퓨터 칩의 개발은 물론이고 모방의 대상이 되는 뇌의 비밀을 푸는 것조차 인류는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인간의 뇌에는 1000억여 개에 달하는 뉴런이 있고, 또 각 뉴런이 1만 개가 넘는 시냅스와 연결되어 있어 이를 해독하는 데에만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지요. 또한 간신히 한 사람의 뇌 지도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사람의 뇌는 각각이 너무도 상이하여 이를 인공지능 연구에 보편적으로 활용하기는 무리일 거란 전망입니다.
인공지능이 스카이넷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앞서, 알파고의 등장을 보며 현실적으로 우려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가깝고도 확실한 미래에 도래할 ‘약한 인공지능’의 시대이지요.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사고하지는 못하지만 학습한 분야에 한해서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임무를 수행해내기도 합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넘볼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바둑에서 알파고가 승리를 거두는 것을 우리는 모두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영역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인간보다 나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이죠.
ㅣ 사진출처 머니투데이
18세기 산업혁명에서 기계는 인간의 팔다리를 대신하였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찾아올 인공지능의 시대에서는 기계가 인간의 두뇌까지 아울러 대체하게 됩니다. 그 때에는 지금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역할도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은행이나 회계 업무, 공무원의 행정 업무의 대부분을 고차원의 알고리즘과 데이터 기술로 처리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심지어는 의사, 법률가, 교수 등 고숙련 전문직조차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공세로부터 안전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의료분야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바로 IBM에서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왓슨은 이미 인간과의 체스 및 퀴즈 경기에서 가공할 자료 처리 속도와 언어 이해 능력을 증명한 바 있지요. 이번에는 암 치료 도우미로 나섰습니다. 방대한 과거 의료 데이터와 논문 등을 왓슨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면, 왓슨은 이를 실제 환자의 의료 데이터와 대조하여 각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방침이나 투여할 약물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암에 맞서는 것은 시간 싸움이라고 하는데요. 사람이 직접 할 때에는 암 유전자를 분석하고 과거 사례 및 논문과 대조하여 최적의 치료 방안을 결정하는 데 며칠에서 몇 주가 소요되었을 과정을 왓슨은 단 몇 분 안에 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강한 인공지능이든 약한 인공지능이든,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 인간이 있을 자리를 앗아가는 위협적인 일이며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마땅할까요? 인공지능을 마냥 신기해하거나 혹은 두려워하기에 앞서, 전세계의 IT기업이 이처럼 위험스러운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드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요.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보다 풍족하고 편리하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또한 바로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은 무한한 가치를 창출합니다. 불과 200년 전 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부였다는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요.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할 때 100명 중 95명은 일자리를 옮겨야 할지 모르나, 그 95명이 모두 집에서 놀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인간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대폭 감소할지라도, 동시에 그에 상당하는 혹은 그 이상으로 무궁무진한 기회와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인공지능이 다양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더라도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므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찬다기보다는 동료로서 인간을 돕는 고마운 기능을 담당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로봇으로 인해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업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죠. 가령 IBM의 인공지능 왓슨의 활약으로 병원 의사가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찾고 분석하는 노동에서 벗어나 그 절약된 시간만큼 더 많은 환자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인공지능은, 하루가 다르게 영리해지고 점점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제는 싫든 좋든, 우리에게 찾아오고야 말 미래이지요. 인류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난 인공지능이라지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걸 우리는 모두 잘 압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변화와 그 영향력을 바로 알고 대비할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똑똑한 인공지능을 똑똑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