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영국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그려보았을 겁니다. 해리처럼 9와 3/4번 승강장으로 들어가 호그와트를 누비는 내 모습을요. 지팡이를 휘둘러 패트로누스를 만들어내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기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머글*. 소설 속 마법 세계에 들어간 것과 같은 체험을 죽기 전에 해볼 수나 있을까요? 놀랍게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내가 가상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2016년의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일상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 해리포터 속 신조어.
VR, 너는 누구?
VR이란 컴퓨터를 통해 구현되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말합니다.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에서와 같이 보고, 듣고, 만지며 주변의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놀라운 입체적 공간을 선사하죠. 기존에는 스크린 상에서 구현되는 가상의 세계를 시각으로만 경험했다면 가상 현실에서는 청각, 촉각 등 오감을 동원하여 모든 것을 현실에서와 같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접하던 가상현실 기술이 어느새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 것이죠. 페이스북(오큘러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소니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앞다투어 VR 디바이스를 선보이는 등, VR 기술은 차세대 IT 비즈니스의 주역으로 관심과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그럼, 이러한 VR의 물결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일상에서 만나는 VR
업계에서는 2016년이 가상현실 대중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VR의 구현은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시도가 이루어져왔지만, 현실감을 주기에 부족한 그래픽 기술과 높은 비용 탓에 대중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현실에 버금가는 고해상도 그래픽과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지는 VR 기기, 무엇보다 저렴해진 가격으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드디어 VR은 대중의 일상생활 속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VR 기술의 성장에 가장 열띤 관심을 보이는 곳은 단연 게임 산업일 텐데요. 지난 3월 말, 오큘러스에서 개발한 오큘러스 리프트가 출시되었습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가상현실 게임을 위해 개발된 헤드셋으로 헤드셋이 머리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감지해 머리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같은 방향의 시각을 제공합니다. 또한 눈동자를 움직이면 넓은 시야각의 파노라마 디스플레이가 펼쳐져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하죠. 초기 예상보다 훨씬 높은 599달러(약 72만원)로 가격이 책정되어 소비자의 원성을 사기도 했던 오큘러스 리프트입니다만, 예약판매 시작 첫날부터 3개월치 물량이 매진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뒤이어 HTC의 VR기기인 Vive(바이브)가 출시되면서 오큘러스 리프트와 치열한 격돌이 예상되고 있으며, 오는 10월에는 소니에서 야심작 PS VR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가장 먼저 개발을 시작한 오큘러스 리프트를 지원하는 게임만 이미 100종 이상이며, 이는 기존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현장감을 선사하며 새로운 게임 시장을 열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어디 게임뿐일까요? VR은 이미 생각보다 우리 삶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으며 그 활용범위와 폭은 무궁무진하게 확장되어나갈 전망입니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는 지난 2014년 오큘러스VR을 파격 인수하며 ‘지금은 VR이 주로 게임이나 오락에 사용되지만, 나중에는 우리의 생활과 작업, 소통방식 모두를 바꿀 수 있다’며 VR의 앞날을 예언한 바 있지요. VR이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든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으시나요?
수업시간에 VR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목해보겠습니다. 역사시간에는 VR을 통해 중세 시대의 건물을 방문하여 책 속에서나 보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과학 시간에는 화질 좋은 컬러사진보다 생생한 우주 속으로 나아가 달의 표면을 걷고 만져보는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겠죠. VR을 교육과 연결하려는 노력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 교사들은 지금도 VR을 수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쇼핑을 생각해볼까요? 옷을 사려고 하면 항상 고민입니다. 입어보지 않고 사기엔 핏과 사이즈가 내게 맞지 않을까 봐 걱정이고, 일일이 입어보고 사자니 너무 번거롭지요. 실제로 입어보지 않고도 VR이 도입된 스마트 거울을 통해 새 옷을 입은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미국 의류 브랜드 ‘레베카 민코프’는 이미 VR을 오프라인 매장 탈의실에 도입하여 소비자의 구매 결정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옷을 입어볼 수 없는 온라인쇼핑의 맹점을 해결하기 위한 가상 탈의실도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 같은 가상 탈의실의 성공 여부는 실제 구매로 전환되는 비율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l 사진출처 trendspectrum
그렇다면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어떨까요? 바로 페이스북이 VR사업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상현실이 개인 기기 안에서 구현되기에 외로워도 모든 걸 혼자 해야 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VR은 소셜 기능을 띠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가상 공간에 모여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 장소에 함께 있는 느낌을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집에 앉아 고글을 쓰는 것만으로 말이죠. 가상현실이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거나 돈독하게 하는 SNS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l 사진출처 삼성전자
앞으로 다가올 VR
말씀 드린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우리 일상 속에 가상현실을 대입할 수 있는 영역은 무한히 넓고 다양합니다. 지금까지 VR기기는 주로 게임, 오락 등의 산업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같은 일부 분야에서만 소규모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의료, 군사, 교육, 여행, 건축, 미술, 음악 등을 아우르며 분야의 제한 없이 뻗어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현실은 기업들에게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열어줄 차세대 플랫폼으로서 각별히 주목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VR이 이처럼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한 때 기존의 2D 영상에 입체감을 덧입힌 3D 영상의 열풍이 불었었는데요. 전용안경만 끼면 하나의 영상을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3D 영화와 달리 V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것은 기기를 착용한 1인에 국한됩니다. VR기기의 가격장벽은 아직 충분히 허물어지지 않은 상태. 따라서 일반 소비자들이 VR 콘텐츠를 접하기가 쉽지 않으며 VR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고 낯선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2016년 올해 선보이는 VR 기기의 활약으로 한 고개를 넘어, 주커버그의 말처럼 VR의 열기와 영향력이 우리 삶의 전역으로 전파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